해방의 준비와 새로운 사회 건설 구상
한중일의 반제 연대활동
식민지기 내내 동아시아에서는 반제국주의 투쟁을 벌이며 한중일 간 국제 연대가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중국으로 망명했던 민족운동가들은 1911년의 신해혁명이 이룬 성공에 고무됐습니다. 김규흥 등은 직접 신해혁명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친밀해진 천치메이, 후한 민 등의 중국 혁명파 지도자들과 신규식, 조소앙 등의 민족운동가들이 1912년 반제국주의를 지향하는 연대조직인 신아동제사를 결성했습니다. 또한 조소앙은 신아동제사와 별도로 천궈푸, 창지 등과 함께 아세아민족반일대동당을 결성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 각지에서 한중호조사가, 광저우에서는 중한협회가 결성됐습니다. 중한협회는 1921년 11월에 열린 워싱턴회의와 중국 각계에 선언서 등을 보내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고, 한국의 독립과 중국 주권의 유지를 호소했습니다. 중한협회의 기관지 광명은 한인과 중국인이 함께 만들었는데, 일본 침략에 반대하고 한중 연대를 호소하는 내용을 주로 담았습니다.
한중일 아나키스트들도 활발한 국제 연대활동을 펼쳤습니다. 이정규 등은 1923년 중국 아나키스트들과 합작해 후난성 한수이현에 이상촌인 양도촌을 건설했습니다. 베이징에서는 1924년 한중연대아나키스트조직인 흑기연맹이 결성됐습니다. 이정규, 이을규 등이 1927년 중국과 일본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만든 상하이노동대학은 동아시아 아나키스트 국제 연대의 실험장 역할을 했습니다. 같은 해 조선, 중국, 타이완, 일본, 베트남, 인도, 필리핀 등 7개국 대표들이 톈진에 모여 무정부주의동방연맹을 조직했습니다. 무정부주의동방연맹은 동아시아 국가의 국체를 변혁해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동시에 자유노동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1928년 상하이에서는 이을규, 류자명, 백정기, 정화암, 유림, 이석규 등이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했습니다. 이 연명의 창립식에는 조선,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의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동아시아 각국의 아나키스트들이 단결해 국제 연대를 강화하고 자유 연합의 조직원리 아래 민족의 자주성과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이상적인 사회 건설에 매진하자고 결의했습니다. 서기국 위원으로 조선의 이정규, 일본의 이카가와 케이라이, 중국의 마우이보, 우커창, 덩멍시안을 선출했고 기관지 동방을 발행했습니다.
중일전쟁 이후 무장 세력 간 국제 연대활동이 개시됐습니다. 김원봉 등 한인 청년들은 항일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 정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협의한 결과, 1938년 중국 관내 지역 최초의 무장단체인 조선의용대를 결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으로서 중국에서 반전활동을 펼치고 있던 아오야먀 가즈오의 협조가 도움이 됐습니다. 한편 조선의용군은 일본 반전단체와 연대해 반전운동을 펼쳤습니다. 1944년에 결성된 일본인 반전 단체인 일본인민해방연맹은 중국공산당 소속 팔로군에 붙잡힌 일본인 포로가 주축이었습니다. 조선의용군은 일본인민해방연맹과 함께 일본군 포로를 심문하고 회유하는 선전공작을 전개했습니다.
신사회, 신국가 건설을 향한 모색
해방이 다가오면서 국내외 민족운동단체들은 독립 후 건설할 신사회 신국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임시정부는 해방 이후 정치 이념과 독립전쟁 준비 태세를 천명하는 대한민국건국강령을 제정했습니다. 대한민국건국강령은 조소앙이 제창한 삼균주의를 이론적 틀로 삼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의회주의에 바탕을 둔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사회, 경제적으로는 균등사회의 건설을 지향했습니다.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실현하고 나아가 세계 인류의 행복을 위해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조선독립동맹은 당파를 망라해 항일 민족 통일전선을 구축하고 아시아의 민족해방운동 및 일본의 반전운동과 연대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강령에서는 일제의 한국 지배를 전복하고, 보통선거에 의한 민주 정권을 건립하자고 했습니다. 또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일제, 친일 대기업의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며, 8시간 노동제, 사회노동보험제, 통일 누진세제, 의무교육제 등을 실시하자고 선언했습니다.
조선건국동맹은 일제의 패망을 가속화하고 건국 주체를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대동단결, 거국일치의 반일 통일전선을 건설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르며 노농대중의 해방에 노력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조선독립동맹과 조선건국동맹은 신사회, 신국가론에 대한 서로의 견해가 일치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조선독립동맹은 ‘조선의 상황이 무산계급 혁명 단계가 아니기에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을 내걸고 있어 건국 동맹과 이념과 실천 면에서 완전히 합치한다’며 상호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신사회, 신국가론은 여러 갈래에서 나왔지만 좌우 분열을 극복하고 정치적으로 민주공화국, 사회, 경제적으로 균등사회의 실현을 지향하는 국가를 건설하자는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분열이 아닌 통합을, 고립이 아닌 연대를 추구하는 것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성을 가진 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