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대한제국3 통치기구의 이원화와 식산흥업 정책 통치기구의 이원화 대한제국 성립 이후 국가기관의 개편 결과 통치기구는 궁내부와 정부로 이원화되었습니다.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외세와 결탁되어있거나 황제의 명령이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전달되어도 시행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고종은 늘 자신의 의지대로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때문에 자신이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황제 직속의 기구인 궁내부를 중심으로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때문에 고종은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필요한 기구를 신설하거나, 궁내부의 기능을 확대해 주요 정무와 사업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정부기구를 폐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일한 기능을 담당하는 행정기구가 정부와 궁내부 양쪽에 모두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통치기구를 이원화한 것으로 이.. 2023. 2. 23. 황제권 전제화와 정치 세력 재편 고종의 황제권 강화 정책 독립협회가 해산된 이후 고종 황제는 국내 정치 세력을 상호 견제하면서 군주권을 강화해갑니다. 이는 황제 권력에 도전할 만한 세력은 국외 망명자 세력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고종은 단발령을 폐지하고 음력을 복구합니다. '구본신참'의 국가 운영 기준에서 옛것을 근본으로 한다는 '구본'에 대한 상징적 조치로, 이를 통해 민심을 얻으려는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1899년 4월 27일 조서에서는 '충군애국'에 기초한 전통적인 유교 숭상을 강조합니다. 이는 민중을 황제에게 충성하는 신민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황제의 절대권력을 상징화하는 작업도 추진해나가는데, 같은 해 7월에는 표훈원을 설치해 훈장제도를 창설했고, 10월에는 왕실을 위해 싸우.. 2023. 2. 23. 갑오개혁 정부의 붕괴와 대한제국의 수립 삼국간섭과 명성황후 피살 1895년 4월 청일전쟁에 대한 강화회담을 통해 시모노세키조약이 맺어지면서 동아시아 정국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러시아는 일본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만주에 진출하는 것에 반대해 독일, 프랑스와 함께 삼국간섭을 가했고, 그 결과 랴오둥반도가 중국에 반환됩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조선 보호국화 전략도 더 이상 추진되기 어려워졌습니다. 일본의 영향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되면서 조선 정부도 변화를 맞게 됩니다. 김홍집, 박영효 연립 내각에 이어 박영효가 주도권을 행사한 박정양 내각이 등장했지만, 박영효가 반역모의 혐의로 축출되면서 보수적인 정부로 교체됩니다. 또한 그간 진행된 급격한 개혁으로 지방의 이서, 군인 등이 개혁에서 배제되고 일자리를 잃으면서 불만이 쌓였고, 일부 관리와 지방 유생 등.. 2023. 2. 23.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