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기군의 설치
1880년을 전후로 조선 정부는 문호개방을 위한 근대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갑니다. 1880년 음력 12월에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 12사를 두어 외교통상 및 군국기무를 전담하도록 합니다. 정부는 통리기무아문의 위상을 의정부와 동등하게 하여 서구식 근대화 정책과 부국강병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통리기무아문은 군대 개편 및 서구식 군대 양성도 힘썼습니다. 그리고 1881년 기존의 군사조직인 5군영과 무위소를 무위영과 장어영으로 통폐합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무위영 내에는 서구식 신식 군대를 이끌어갈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별기군을 설치했습니다. 별기군의 훈련 담당 교관으로는 일본인 호리모토 레이조를 고용했으며, 소속 군인은 서구식 신식 무기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사절단의 파견과 개화 정책의 추진
조선 정부는 1881년 초에 조사시찰단을 일본으로 파견합니다. 조사시찰단원들은 일본의 정부기관 및 산업시설을 시찰하고, 귀국 후에는 조사 결과를 고종에게 직접 보고했습니다. 고종은 시찰단원 대부분을 통리기무아문의 관리로 임명해 조사 내용을 개화정책과 관련된 업무에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1881년 11월에는 영선사 김윤식 일행을 청의 톈진 기기국으로 파견해 무기 제조와 전기, 화학, 기계, 외국어 등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임오군란의 발생
정부의 개화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개항과 개 화정책에 대한 반감과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882년(고종 19) 7월 19일(음력 6월 5일), 임오군란으로 개화정책에 대한 반발이 폭발해버리고 맙니다. 임오군란은 별기군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았던 구식 군인이 쌀겨와 모래가 섞인 봉급을 받은 후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구식 군인들의 저항운동은 서울의 하층민이 대거 동참하면서 도시 폭동 양상으로 확대됩니다.
군인들은 재기를 노리던 흥선대원군의 지지를 받으며 포도청과 의금부를 습격하고, 민씨 척족 세력 및 개화파 관료의 집도 공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씨 척족인 민겸호가 사망했으며, 중전 민씨는 궁궐을 빠져나와 장호원으 로 피신합니다.
흥선대원군 세력과 합세한 성난 군민은 일본인을 공격하고 일본공사관을 포위해 습격합니다. 그 과정에서 별기군 교관 호리모토가 살해되고 상당 수 일본인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토모는 일본인들과 함께 공사관을 탈출해 제물포에 이르러, 마침 그곳을 항해하던 영국 측량선 플라잉 피시(Flying Fish)호를 타고 나가사키로 피신합니다. 임오군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고종은 흥선대원군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해버립니다. 흥선대원군은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하고 실종된 중전 민씨의 국상을 선포하여, 민씨 척족의 정치적 기반을 무력화하고자 했습니다.
청의 간섭 심화
임오군란의 소식은 나가사키를 거쳐 도쿄와 베이징에도 전해집니다. 일본 정부는 병력과 함께 하나부사 공사를 다시 서울로 파견했고, 리훙장은 우창칭 휘하 청군 3,000여 명을 조선으로 출동시킵니다. 흥선대원군은 청군과 회담을 통해 군란 수습 방안을 모색하려고 했지만, 청군은 군란에 대한 책임을 지워 흥선대원군을 톈진의 보정부로 압송하고 임오군란에 관여했던 군인들을 모두 처단합니다.
개화 세력에 반발한 임오군란이 진압되자, 고종은 척화비를 제거하라고 발표함으로써 서구를 향한 문호개방과 근대화 정책 추진을 공식화합니다. 조선 정부는 일본과 제물포조약을 체결해 임오군란 당시 일본의 인적, 물적 피해에 대한 배상과 사죄, 사절단의 파견을 약속합니다. 임오군란 후에도 청군은 철수하지 않고 서울에 계속 주둔하며, 1882년 10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해 조선에 대한 정치, 경제적 간섭을 본격화합니다. 조선 내에서의 청의 간섭 확대는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당 인사들의 불만을 초래했고, 이는 다시 갑신정변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선은 점차 청과 일본의 샅바싸움에 끌려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역사Tal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주적 외교정책의 전개 (0) | 2023.02.21 |
---|---|
갑신정변의 발생 (0) | 2023.02.21 |
서양국가와의 조약 체결 (0) | 2023.02.21 |
개항과 불평등조약 (1) | 2023.02.21 |
천주교 탄압과 반침략 투쟁 (0) | 2023.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