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의 발간
독립협회는 독립문 건립과 독립공원 조성을 위한 추진기구로 창립됩니다.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이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아관파천 후 고종은 친일 성향의 김홍집 내각을 해산시키고 친러,친미 성향의 박정양, 이범진, 이완용 등 정동구락부 세력을 중심으로 한 내각을 출범시킵니다.
이들은 열강 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면서 일본의 내정 간섭을 견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관파천과 일본군이 서울에 주둔하는 상황이 이어져 정치는 안정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정동구락부 내각은 아관파천의 불가피성을 선전하는 동시에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한 신문 발간을 추진해, 그 책임자로 서재필을 선정합니다. 갑신정변으로 도미했던 서재필은 1895년 12월 미국에서 귀국했습니다. 이후 김홍집 내각의 협력을 받아 신문 발간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일본의 방해 로 중단된 상황이었습니다. 새로 수립된 정동구락부 내각이 신문 발간 사업을 재추진하고 지원해주면서 서재필은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할 수 있었습니다.
「독립신문」은 정동구락부 내각과 서재필이 계획했던대로 정부의 정책을 선전하고, 자주독립 및 민권사상을 확산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개혁을 지향하는 개화파를 결집하는데에도 기여합니다. 정동구락부 세력은 친러,친미적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갑오개혁기의 김홍집 내각과 마찬가지로 개화를 지향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공사관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으나, 러시아는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견제를 받고 있어서 조선 내정에 깊숙하게 관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조선에 언제든 국왕 중심의 권력구조를 재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살아났습니다. 실제로 고종이 의정부 체제를 복구해 친정 체제 구축을 시도하면서 갑오개혁 때 퇴진했던 보수파가 다시 등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가령 학부대신 신기선등은 갑오개혁으로 도입된 모든 제도를 폐지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독립협회의 결성
이러한 정세에서 서재필과 정동구락부 세력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천명하는 상징물로 독립문을 건립하고 독립공원을 조성하자고 건의합니다. 취지에 공감한 고종이 6월에 이를 수락하자. 이들은 곧바로 추진기구를 결성한다는 명분으로 독립협회를 창립합니다. 독립협회는 창립총회를 개최해 임원진을 선출하고, 독립협회규칙을 제정, 공포합니다.이에 따르면 독립협회에 보조금을 납부한 사람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었고, 위원들은 매주 모임을 개최해 모든 안전을 다수결로 의결한다고 규정하는 등 민주적인 운영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창립 초기에 독립협회는 관변단체의 성격이 강했는데,일반인의 참여율이 높지 않았고, 회장 안경수,고문 서재필, 위원장 이완용 등 주요 임원이 모두 정동구락부 계열의 현직 관료였습니다. 7월 하순 왕실에서 왕세자의 명의로 독립문 건립에 들어가는 비용의 약 20%에 해당하는 1,000원을 회사합니다. 이를 계기로 독립협회 회원 가입이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독립관에서 매주 개최됐던 집회는 여전히 전현직 관료들의 사교모임에 가까웠습니다.
대중 단체로의 변화
독립협회를 대중 계몽운동단체로 변화시켜 나간 주역은 윤치호(1865~1945)였습니다. 그는 8월 5일 서재필을 만나 독립협회를 계몽단체로 변모시키자고 제안했고, 서재필은 이를 받아들여 독립협회는 매주 1회 독립관에서 토론회를 개최해 회원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킵니다. 8월 29일 열린 제1회 토론회의 주제는 '조선의 급무는 인민의 교육으로 작정함'이었습니다.
한편 1898년 2월 13일 제21회 토론회에서는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강력히 반대하는 의견을 상주하는 「구국선언상소」를 결정했는데, 이를 전후해 독립협회의 활동은 그 성격이 급격히 변화하게 됩니다.이 때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계몽운동기'로, 이후를 '개혁운동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계몽운동기에는 관료 및 양반 신분이 회원의 주를 이뤘고, 토론회의 주제는 신교육, 미신 타파, 신문 보급, 위생문제 등 대부분 계몽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반면 개혁운동기에는 신식학교 출신 및 외국 유학생 등 근대교육을 받은 젊은 층의 참여가 급증했고, 기존의 관료층은 대거 퇴진했습니다. 토론회의 주제 또 열강의 이권 침탈 반대, 민권 신장, 의회 설립, 개혁내각 수립 등과 같은 정치 현안이 오르게 됩니다.활동 방식도 독립관에서 토론회를 여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적 정치운동으로 발전하기 사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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