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상품의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서 대규모화를 촉진하며 거대 기업을 출현시켰습니다. 기계화된 공장에서는 값싼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했고,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교통이 발전하면서 상품을 유통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져 시장 규모가 점점 확대됐습니다. 거대 기업이 대규모 자본과 우세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독점해가는 양상도 보였습니다.
독점자본주의에서 성장한 자본가들은 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상품 단가를 낮추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과잉 생산에 따른 판로를 개척해야 하기도 했고, 잉여 자본을 소진할 새로운 투자처를 확보하기도 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새로운 원료 공급지이면서 시장, 그리고 투자처를 찾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국민국가의 탄생
당시 유럽사회는 명예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이 보편 가치로 부각된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국민국가를 탄생시켰습니다. 국민국가란, 국민이 국가의 주체인 국가를 의미합니다.
국민 국가는 성직자, 귀족, 평민, 농노 등 신분으로 구분되던 사람들을 '국민'으로 포섭해 동등한 의무와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봉건 영주나 귀족에게 예속되었던 사람들은 이제 비로소 법적 자유와 평등을 얻게 됩니다.
국민국가의 탄생이 끼친 영향
유럽사회에서는 소수의 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부의 집중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그에 따라 계급 및 계층 간의 갈등이 표출됩니다. 국민국가는 내적 갈등과 균열을 봉합하고 국가 통합을 구현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활용합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통일 이후 세운 공립초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는 한편 소수언어의 사용을 금지시킵니다. 19세기 유럽의 음악가들은 신화, 역사, 지리, 문화를 소재로 민족, 애국적 정서를 담아낸 곡을 만듭니다. 유럽 국가들은 교육과 문화를 통해 모든 국민이 공통의 경험과 기억을 공유한다고 강조하면서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일체감, 나아가 애국심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민족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결합
민족주의는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배타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해외 시장으로 진출한 독점자본주의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침략적 성격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국민국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세운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비서구 지역으로 정치, 경제적 침략을 본격화합니다. 바야흐로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서구 국가들은 문명국을 자처하면서 비서구 사회를 야만으로 규정했습니다. 인종주의를 조장하여 유색인종을 열등한 존재로 차별하기도 했습니다. 문명화로 인류의 진보를 달성해야 한다는 명분과 사회진화론을 앞세워 비서구 지역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서구 국제법의 탄생
서구의 국제법은 서구와 비서구를 구분하는 체계 중 하나였습니다. 국제법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유럽 기독교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정한 공법에서 출발했습니다. 국제법에서 규정한 상주 사절단 파견, 무역 규정, 조약 등은 서구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 적용된 규범이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서구 국제법학자들은 비서구, 비기독교 국가의 법체계에 비문명 요소가 작동한다고 판단해 국제법은 서구 기독교 국가에서만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서구식 문명화를 이루지 못한 국가에는 주권국가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서구 열강은 국제법의 논리에 따라 비서구, 비기독교 국가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자국법을 적용하는 치외법권을 관철시킵니다.
동아시아에 전파된 '만국공법'
서구의 국제법이 '만국공법'으로 번역되어 동아시아에 전래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습니다. 청은 1864년 미국 법학자 헨리 휘턴의 '국제법 원리'를 '만국공법'으로 번역 출간합니다. 일본은 1868년 '국제법 원리'를 일본어로 번역했고, 조선은 한역된 청의 '만국공법'을 수용합니다. 동아시아 삼국이 만국공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차이가 납니다.
청은 '만국공법'의 속국, 반주지국 논리에 주목합니다. 청은 이 논리를 근거로 조선에게 서구 열강과 조약을 체결하도록 자주를 인정함과 동시에 조선이 자국의 속국임을 분명히 합니다. 1876년 일본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통해 조선과 청국의 속방관계를 부정하고자 시도합니다. 조선에서는 개화당(급진개화파)을 중심으로 '만국공법'의 독립국 지위를 얻고자 합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는 전통적인 중화질서와 서구의 만국공법 질서가 양립하는 가운데 상호관계를 정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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