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근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지구 곳곳에 무역과 식민을 위한 거점을 구축하면서 세계 자본주의체제가 형성됩니다. 이후 유럽 열강은 지속적으로 식민지를 확대해나갔습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공업 원료를 확보하고 상품을 수출할 곳이 절실히 필요해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더 많은 식민지를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격화됩니다. 제국주의시대가 본격화한 것입니다.
유럽 열강은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여기에 열강 간 군비 경쟁, 민족 갈등이 겹치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유럽 열강은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오스만제국 등의 동맹국과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의 '연합국'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였고, 이탈리아와 미국이 뒤늦게 연합국에 가담했습니다. 전쟁은 양 진영의 식민지를 포함한 전 세계로 확장됩니다. 1902년과 1905년 두 차례에 걸쳐 영일동맹을 맺은 일본은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독일의 조차지였던 중국의 칭다오와 태평양의 식민지 섬들을 점령했습니다.
민족자결주의의 대두와 확산
제1차 세계대전은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한 총력전이었습니다. 전쟁은 엄청난 희생을 낳았고 사회불안은 커져갔습니다. 그 결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비관하고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에 지친 민중이 사회주의혁명을 일으킵니다. 혁명 직후 블라디미르 레닌(1870~ 1924)은 민족자결 원칙을 담은 「평화에 관한 포고」를 발표합니다. 1918년 1월 미국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1856~ 1924)이 더 이상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원칙으로 제시한 「14개조」에도 민족자결 조항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민족자결 원칙은 1919년에 체결된 「베르사유(Versalles) 조약)에서 패전국의 일부 식민지에 적용되는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민족자결주의가 확산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였습니다. 민족자결주의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식민지, 반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던 전 세계 약소민족들에게 독립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1920년 1월 창립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결정에 따라, 민족자결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패전국 식민지들도 연합국의 위임통치를 받게됨으로써 명목상으로나마 식민지에서 벗어납니다.
국제연맹은 발족 당시 가맹국이 42개국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를 제외한 전세계 대부분 지역이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의 가맹국은 상임이사국이었던 일본 외에 중국, 인도, 태국, 이란 5개국에 불과했으며, 이 중 인도와 이란은 영국의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 상태였습니다. 중국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1919년에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참여했지만, 독일이 지녔던 산둥성의 권익을 일본이 차지하는 것에 반대하며 「베르사유조약」의 조인을 거부합니다.
민족의식의 자각과 비식민지화의 흐름
제1차 세계대전에 노동자, 농민은 물론 식민지 인민까지 총동원되면서 많은 식민지인이 고향을 떠나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전장에서 근대, 민족, 국가를 경험하게 됩니다. 전쟁과정에서 각성된 민족의식은 근대화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납니다. 제국주의 열강도 효율적인 지배와 수탈을 위해 여러 식민지에 산업과 교육 분야의 개발정책을 시행합니다. 그리고 산업의 발달과 교육의 보급은 다시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지면서 식민지 제국의 동요, 즉 비식민화의 흐름을 가속화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1919년 이후 독립전쟁을 계속한 끝에 1920년 영국의 자치령인 아일랜드자유국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130만 명 이상이 영국군으로 징병된 인도에서는 간디와 판디트. 자와할랄이 지도하는 국민회의파를 중심으로 '스와라지(자치)'를 얻기 위한 투쟁이 이어집니다.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은 1916년에 자치를 인정받았고, 1934년에는 10년 후 독립을 약속받습니다.
1910년 일제는 한국을 병합하고 헌병경찰을 앞세워 무단통치를 자행합니다. 한국은 19세기에 정점에 오른 세계적 식민화 물결의 끝자락에 말려들어 간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한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을 즈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비식민화 흐름이 세계를 휩쓸게 되었습니다.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고, 이에 놀란 일제는 1920년대에 이른바 문화통치로 통치 방식을 바꿉니다. 이런 흐름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뚜렷해진 식민지 제국의 동요라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Tal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총독부의 설립 (0) | 2023.03.04 |
---|---|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 유형 (0) | 2023.02.28 |
일본의 한국병합 (0) | 2023.02.27 |
한국병합을 위한 일본의 준비작업 (0) | 2023.02.27 |
의병투쟁과 의열투쟁 (0) | 2023.02.27 |